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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기독교의 핵심 - 예수의 부활

복서겸파이터 2018. 11. 30. 22:01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핵심은 뭐냐하면 바로 예수의 부활이다. 예수의 부활이야말로 기독교의 가장 기초가 되고 예수의 부활이 부정된다면 기독교는 존재자체가 의미가 없는 종교다. 바울이 말했지만, 부활이 없다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기독교와 타 종교의 차이를 한번 생각해보자. 고타마 싯타르타는 80을 넘게 살았고, 공자는 70을 넘게, 무하마드도 60은 넘겼다. 소크라테스도 50은 넘겼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같이 고대인들 치고는 매우 장수한 편이다. 그래서 긴 일생을 살면서 깨달은 것들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사후에는 뛰어난 제자들이 그런 가르침을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포교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예수는 고작 서른이 조금 넘은 나이에 죽었다. 복음서에 따르면 지상사역은 짧게 잡으면 1년 반, 길게 잡아도 3년이 넘지 않는다. 아무리 천재에 기상천외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2년 정도 활동하다가 처형되어 죽은 사람이 남기면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뭔 그런 대단한 제자가 나올 수 도 없고. 더구나 복음서에 남겨진 예수의 어록 중 뭐가 진짜 예수에게서 발화된 것인가는 알 수가 없는 상태이다. 예컨대, 예수가 말한 황금률인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도 바로 전시대 랍비 힐렐이 남긴 네게 싫은 것은 남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요, 그 밖의 것은 주석에 불과합니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는 게 정설이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비기독교 자료는 정말 적다. 아예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어쨌든 예수는 부활을 했다는데, 부활에 대한 증거는 제자들의 증언밖에 없다. 굳이 하나 더 꼽자면 빈무덤. 바트 어만 같은 비기독교인 신약학자는 그 당시 십자가 처형당한 사람들처럼 공동묘지에 있다가 들개들 같은 거에 먹혔을 거라고 보던데, 복음서에서는 그래서 그렇게 빈무덤 설화를 강조하는 건지도 모른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그저 죽은 사람이 소생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죽었다가 예수가 다시 살린 나사로가 다시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복음서의 증언을 보면 부활한 예수를 만난 예수의 제자들의 당혹스러움이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문을 잠그고 모여 있는데 갑자기 가운데에 나타난다 던다거나 또는 갑자기 사라지고, 바울의 경우에는 증언에 차이가 있지만 빛으로만 보인다던 지, 소리만 들린다던 지. 그렇다고 유령은 아닌 것이 십자가 처형의 흔적도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고 식사도 같이 한다던 장면을 보면 그렇다.

복음서들과는 묘사가 다른데, 사실은 신약성서 중 가장 오래 된 바울의 서신서 중 유명한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을 보자.

 

(새번역 고린도전서 15:3~26)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께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그런데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나는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도입니다. 나는 사도라고 불릴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없이, 우리는 이렇게 전파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이렇게 믿었습니다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전파하는데, 어찌하여 여러분 가운데 더러는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될 것입니다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거짓되이 증언하는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정말로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지 아니하셨을 터인데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셨다고,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가 증언했기 때문입니다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열매가 되셨습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또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차례대로 그렇게 것입니다. 첫째는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때가 마지막입니다. 때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위와 모든 권력을 폐하시고,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넘겨드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아래에 두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부활한 예수를 새로운 존재로 자각하게 된다. 더 이상 죽지 않는, 새로운 몸을 가진 존재. 이 세상의 현실성(reality)과 다른 현실성을 가진 존재. 예수의 부활로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을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이 당연한데, 더 이상 죽지 않는 존재가 된 예수를 만난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일이 자신들이 가진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지 찾아보게 되고 그것을 예수 부활의 현실성으로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된다. 지상 사역 동안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부활한 예수를 만난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그리스어로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되고, 예수는 인자와 자신을 구별해서 이야기 했지만,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에게는 자신들이 경험한 예수와 종말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올 예수 사이의 간격을 느낄 수 없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육체의 부활을 믿었는데, 이것이 이 세상의 종말에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은 종말에 일어날 일이 예수에게 먼저 이루어졌다(선취)라고 믿게 되었고, 예수가 다시 이 세상에 내려오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일어날 때이고 이 때 이건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지게 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바로 죽음의 죽음이다. 

  복음을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로마시대에 새로운 황제가 취임했을 때 그 소식을 알리는 것과 그 단어가 같다고 한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 들에게는 자신들 위에 군림하겠지만, 언젠가 죽어버릴 인물이 황제 위에 올랐다는 것이 진정한 복음이 될 수 없고, 그것은 우리가 예수와 함께라면 인간의 영원한 숙명인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부활 사건 이후에 예수의 지상사역에서의 언행이 재해석되고, 구약도 재해석되기 시작하지. 여기서 기독교와 유대교가 갈라지게 되는 된다.  

기독교의 알파와 오메가는 예수의 부활이다. 이 이후에 파생된 신학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한 주석일 뿐.

 

 

. 예수의 부활과 성경에 기록된 초현실적인 기적은 무엇이 다른가?

 

우선 기적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신앙에 있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수가 물고기 두 마리와 빵 5조각으로 5천명을 먹이던, 4천명을 먹이던 그런 일이 있었다고 믿던지 아니면 믿지 않던지 간에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다. 신학적 해석의 차이가 있을 뿐. 하지만 예수가 부활에서 시공간을 초월해서 지금도 살아있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시간을 초월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적은 이 세상의 물리법칙을 위배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부활은 이 세상의 물리법칙과는 다른 현실성에 의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 신학의 해석이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수 많은 기적들은 그 기적을 기록한 동기가 엿보인다. 예를 들어, 날 때부터 소경인자를 눈을 뜨게 했다는 것은 구약에 예언자가 이야기 한 눈먼 자가 보게 되고라는 구절을 성취하였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삽입한 구절로 보인다. 하지만 십자가에서의 처형과 부활은 아무 동기가 암시가 없다. 이 사건이 먼저 일어나고 이후에 이 사건을 통해 구약을 재해석해 내었을 뿐이다.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 있다. 유대인들은 수 많은 시련을 겪었고 이제는 자신들을 구원해줄 정치적 메시아를 믿었다. 또는 로마나 바벨론으로 대표되는 악의 세력을 무찌를 영웅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메시아라는 사람이 와서 십자가에 처형된다고? 당시 유대인들은 이러한 생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메시아는 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 현대 유대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예수가 메시아라면 지금 세상은 왜 이렇게 악하고 고통이 넘치는 곳이냐는 것이다. 메시아가 왔다면 이미 이 세상은 공의가 실현되는 유토피아로 바뀌었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부활이라는 시각으로 성경을 해석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해석이 이렇게 차이가 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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